뇌의 두 영역이 어우러져 창조력 뿜어내다

뇌의 두 영역이 어우러져 창조력 뿜어내다

한겨례 신문 [사이언스 온] 공감각의 비밀

삶의 무게에 지친 신문사 기자인 스티브가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삶을 잃어버린 천재 첼리스트 너새니얼을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낸 <솔로이스트>라는 영화를 감명깊게 본 적이 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영화 중반에 두 주인공이 베토벤 교향곡 3번을 감상할 때 너새니얼이 눈을 감고 곡에 빠져들면서 악기 선율은 다양한 색채로 바뀌고 리듬에 맞춰 화면 가득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새니얼은 소리에서 색채를 느끼는 ‘색청’(色聽) 능력을 지닌 공감각자였던 것이다.

청각을 시각화하는 색청처럼 여러 감각이 어우러지는 것을 ‘공감각’이라 하는데, 어떤 자극으로 일어나는 한가지 감각이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김광균 시인의 시 ‘외인촌’에 나오는 시구인 “푸른 종소리”처럼 종소리를 들으며 푸른 빛깔을 느낀다는 것은 공감각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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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의 교차’ 공감각 종류 60가지

2006년 영국 심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인 23명 중 1명이 공감각 능력을 보일 정도로 공감각은 아주 희귀하진 않은데 종류도 매우 다양해 6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흔한 것은 90명 중 1명이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색-자소(字素) 공감각’이다. 문자나 숫자를 저마다 다른 색깔로 인식하는 공감각이다.

혹시 자신한테 색-자소 공감각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간단한 방법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 그림에서 일반인은 숫자 5 사이에 파묻힌 2를 구분하는 게 쉽잖다. 그러나 숫자 5를 녹색으로, 숫자 2를 적색으로 인식하는 색-자소 공감각자라면 색의 대비로 인해 쉽게 숫자 2를 찾을 수 있다.

공감각자의 뇌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에 관한 연구도 이어져 왔다. 2007년 네덜란드 라우와 숄테 교수는 뇌 연구에서 자주 쓰이는 ‘확산텐서영상’(DTI)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라는 방법을 써서 색-자소 공감각자와 일반인의 뇌를 영상으로 비교했다.

연구진은 색-자소 공감각자들이 대뇌피질의 우측 하측두피질에서 일반인과 다른 특징을 보인 것에 주목했다. 그런데 이 영역은 시각 자극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기능에 관여하는 방추상회라는 다른 뇌 영역과 잇닿아 있다. 방추상회의 중간 영역은 ‘문자’ 형태의 자극을 처리하는 부분을 포함하지만 ‘색’을 처리하는 영역에도 인접해 있다. 이 때문에 색-자소 공감각은 이런 두 영역에서 연결성과 교차 활성이 일어나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풀이다.

연구진은 두정피질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두정피질은 여러 형태의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신경세포를 지녀 ‘감각의 결합’을 담당하는데, 색-자소 공감각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이 연구에서는 백질(뇌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의 구조적 연결성이 증가하는 것만 확인됐을 뿐 활성의 양상이 관찰되지 않았지만, 이 영역도 공감각 경험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이뤄진 연구들을 대체로 종합하면, 색-자소 공감각은 다음 두 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첫번째 단계에선, 문자(자소)를 바라볼 때 활성화하는 영역에서 발생한 신호가 근처 색 처리 영역에 전달돼 공감각을 일으킨다. 두번째 단계에선 이렇게 발생한 공감각이 일반 과정보다 더 세게 결합하는 상태로 강화된다. 즉 감각 신호가 서로 다른 뇌 영역 간에 이동하며, 이어 그 신호가 강화됨으로써 공감각이 발현된다는 게 대체적인 설명모형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신경과학으로 공감각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는 여전히 기초 단계이고 다른 여러 공감각은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소리에서 색깔 느끼는 ‘색청’
색깔로 문자·숫자 인식하는 능력
23명 중 1명꼴로 이런 공감각 있다
기억력과 관련 있다 생각했지만
실제론 창조성과 관련 더 높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거울-촉각’ 공감각도 있다

기억력에 좋을까, 창조성에 좋을까

공감각자에 관한 흔한 통념 중 하나는 ‘기억력이 좋다’는 것이다. 실제 공감각을 이용한 기억력 향상법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시각 자극인 숫자 ‘7788’을 외울 때 청각 자극인 기차 소리 ‘칙칙폭폭’을 더하는 방법처럼 말이다. 일반인은 머리를 많이 쓰면서 감각의 연합을 만들지만, 공감각자는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여러 감각이 교차 활성화하기 때문에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07년 영국 워드 교수의 연구를 보면, 공감각자 대부분이 자신의 기억력이 평균 이상이며 70%가량은 공감각이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막상 공감각자와 일반인의 기억력을 검사해보니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공감각자는 단어를 떠올리거나 무엇인가를 빨리 찾을 때에만 일반인보다 ‘약간’ 뛰어날 뿐 전반적인 기억력 검사에선 별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 공감각자가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다는 기대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밝혀진 것이다.

반면에 창조성은 공감각과 관련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공감각자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여러 감각이 연합되는 공감각을 이용해 일반인과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예술 전공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색-자소 공감각의 비율을 조사한 연구 결과에서도 각각 9%와 2%로 큰 차이가 나타났다.

공감각에서 비롯한 창조성은 예술가뿐 아니라 과학자한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 뛰어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공감각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사물을 볼 때 맛을 느끼거나, 수학 공식에서 색채를 느꼈으며 시각화에도 능해 실제 작업 없이도 머릿속에서 완성품을 만들어 내거나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능력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조성처럼 장점이 되는 공감각을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방법은 없을까? 공감각자의 40%에서 부모·형제도 공감각자이고 뇌 구조도 다른 것을 보면 공감각은 유전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부 공감각은 후천적으로 뇌나 시각 경로에 문제가 생기거나 환각제를 복용할 때에도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공감각을 얻고자 일부러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환각제를 복용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2013년 미국의 위너워 교수 연구진은 공감각이 학습과 기억의 영향을 받아 형성될 수도 있다는 보고를 내놓았다. 후속 연구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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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아픔 헤아리는 거울-촉각 공감각

‘거울-촉각 공감각’이라는 독특한 공감각이 있다. 이 공감각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몸에 가해지는 접촉을 볼 때 이를 자기 몸에서도 느끼며, 두뇌도 역시 자기 몸을 만질 때처럼 활성화한다. 그런데 이런 공감각은 우리 사회에서 인기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반면 기억력과 관련한 공감각은 인기가 높아 부모가 자녀의 공감각을 발달시키려 하고, 수험생이 공감각 학습법을 시도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공감각의 신경학적 활성 과정에는 일반인과 다른 뇌의 구조적, 기능적 차이가 존재한다. 보통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비정상 소견은 좋지 않은 의미로 인식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공감각은 예외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억력이 좋아지는 공감각을 갖춰도 지나친 교육열에서 비롯한 무한경쟁에서는 필연적으로 패배자가 발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고 달랠 수 있는 ‘거울-촉각 공감각’이지 않을까?

최강 의사·르네스병원 정신과장

※ 사이언스온 연재 ‘뇌영상과 정신의학’에 실린 글을 필자가 다시 다듬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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