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즐기는 첫 여성 대통령 됐으면”…
5000원·5만원권 초상화 그린 이종상 화백 화업 50년
1963년 국전 특선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 일랑(一浪) 이종상(75·서울대 명예교수) 화백이 올해 화업(畵業) 50년을 맞았다. 이 화백은 서른일곱의 나이에 5000원권 율곡 이이 초상화를 그리고,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2009년에 5만원권 신사임당도 그렸다. 모자(母子)가 나란히 지폐 주인공이 된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지만 두 인물의 초상을 한 사람이 그린 경우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 주말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 화백은 “작업 반세기를 돌아보는 전시를 특별히 준비하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아 24시간이 부족하다”며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그는 화가 외에도 ‘한국벽화연구소장’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 등 직함을 갖고 있다. 목동 예술인센터에서 여는 ‘미술 아카데미’도 이끌고 있다.
그의 고향인 충남 예산에 생가복원 및 기념관 건립이 추진 중이고, 인천에도 그의 이름이 붙은 미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고향도 아닌 인천에 그의 미술관이 세워지는 것은 1998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전시가 계기가 됐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전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수강생을 모집 중인 ‘미술 아카데미’는 23일 실기 오디션을 갖는다. 3월부터 15주 일정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이 화백을 비롯해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그림 그리는 역할을 최민식 대신에 맡은 김선두 중앙대 교수, 동양화가인 김근중 가천대 교수, 벽화를 그리는 서용 동덕여대 교수 등 이 화백의 제자들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 화백은 “해외에서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에 반해 국내에서는 오히려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통해 우리 문화를 알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1977년부터 ‘독도’를 그려온 그는 6월에 다시 독도를 방문해 ‘독도 사랑’ 전시를 열고 하반기에는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전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얘기는 신사임당 초상화로 옮겨갔다. “현모양처이자 예술가의 기질을 드러내기 위해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 그렸지요. 눈과 이마 등 율곡과 닮은 부분도 있고요. 처음에는 ‘주모 같다’ ‘기생 같다’는 반응이었지만 나중에는 ‘육영수를 닮았다’ ‘박근혜 이미지’라고도 했어요. ‘박근혜 같다’는 얘기는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박근혜 당선인의 초상화를 그린다면?”하고 묻자 이 화백은 “강한 캐릭터의 아버지와 인자한 이미지의 어머니를 닮은 얼굴이지만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비판은 받았지만 문화에 애정을 쏟아 많은 일을 했어요. 반면에 박근혜 당선인은 너무 정치적인 것 같아요. 문화 마인드가 부족한 것 같아 조금은 실망스러워요.”
그의 초상화 작업은 얼굴 윤곽을 3D로 복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최근 완성한 고산 윤선도(1587∼1671) 영정은 신상 자료가 전혀 없어 고산의 부모 유골을 바탕으로 했다. 고산 묘소는 문화재여서 파묘가 어렵기 때문에 부모 묘소를 파헤쳐 유골을 3D로 복원한 다음 세밀한 부분을 전통 재료로 그려 완성했다. 이 화백은 “과학적으로 그려야 정확한 초상화가 된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